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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401호-누군가를 세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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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86회 작성일 24-09-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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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세는 저녁


    올봄, 이랑을 여러 골 만들어 반으로 자른 감자 200개를 심었다.
  가을이 오기 전에 천 개쯤 거두게 되리라.

    떠난 것들이 모두 그렇게 돌아오는 건 아니어서, 감자 잎 무성한 밭둑에 서서
  떠난 이들의 수를 세다가 그만둔다.

    고랑 속으로 세어지지 않는 어둠이 스며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누군가 이 저녁, 나를 세기도 하리라. 노을의 꼬리가 잠깐 환해졌다 왈칵 어두워지는 건,
  떠난 내가 그이의 밭에 남겨둔 게 이제 하나도 남지 않은 때문이다.

    이랑 속에서 감자알이 굵어질수록, 환해지는 것보다 어둠으로 깊어지는 일에 다정해질 것 같다.



작가소개    천세진

시인, 소설가, 문화비평가, 수필가. 산문집 『작은 날씨들의 기억』(2024), 장편소설 『이야기꾼 미로』(2021),
시집 『풍경도둑』(2020 아르코문학나눔도서 선정), 문화비평서 『어제를 표절했다』(2019),
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문학나눔 선정)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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