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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400호-집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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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87회 작성일 24-08-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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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탄생

                            글. 하기정 시인

그 집이 걸어왔지
담보도 없이 전세금도 없이
통째로 광마루를 내주었지
돌배나무도 마당으로 걸어왔지
개복숭아는 개울로 걸어나갔지
십 리부터 달려온 오리나무가
그만 쉬자,
대문 앞에서 뚝 멈추었지
창을 열면 뒤란 숲이 깨지는 집이었지
한 무리의 가족들을 부려놓고
태어날 수 있는 집이 되었지
살구꽃 툭툭 지는 밤에 여우가 내려와
아홉 번 재주넘는 집이 되었지
떨어지는 꽃도 눈송이도 젖은 우산도
빚이 쌓이는 언덕 같은 집이었지
털어내고 덜어내도 남아있는 집
울틀꿈틀 비틀거리는 집, 집
죽었다가 환생하기 좋은 집
거푸집을 나오며 무한반복 하는 집
할머니가 된  옛날 여자들이
우물 속으로 빠진 달을 건지러
우르르 콸콸 몰려오는 집

-------------저자 하기정 약력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밤의 귀 낮의 입술 고양이와 걷자
5.18 문학상, 작가의눈 작품상, 불꽃문학상, 시인유스포엠 시인상, 제4회 선경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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