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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제381호 - 사회갈등과 過而不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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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62회 작성일 23-01-29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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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갈등과 過而不改

            호암 최용호(본원 명예이사장, 경북대 명예교수)

한국 사회에서 ‘정치’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가 매우 강하다. 작고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 이 말 때문에 그는 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유명 배우 김혜자씨는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은 왜 맨날 그 모양일까요? 억지를 쓰고 선동을 해서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잖아요. 정치는 대본도 형편없고, 연기자도 형편없어요.”라고 했다. 한국 정치의 위치와 실상을 아주 정확히 지적한 말들이다. 경제는 겨우 선진국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정치는 아직도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수신문은 지난 12월 2022년도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를 선택했다. 전국의 대학교수 935명이 설문에 응했는데, 476표(51%)를 얻어 압도적으로 뽑혔다는 것이다. 2위는 137표(15%)를 얻은 욕개미창(慾蓋彌彰: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 3위는 129표(14%)를 받은 누란지위(累卵之危:달걀을 여러 개 쌓아놓은 듯 위태롭다)였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면서 고칠 생각이 아예 없다.”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에게는 ‘내로남불’이라는 고질병이 생활화⸱체질화되어 있어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는 진단이다. 내로남불은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라는 한문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이 단어를 선택한 교수들의 이유는 각양각색이나, “한국의 정치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잘못을 반복적으로 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절대 반성을 모르는 정치인도 간혹 있다. 논어(論語)의 15편 위령공(衛靈公)편 29장에서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잘못하고도 고치지 아니하면, 이것을 일러 ‘잘못’이라고 한다)라고 말한 공자의 말씀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언제든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잘못을 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치지 않는 데 있다 할 것이다. 현재 여야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민생은 없고, 당리당략에 빠져서 나라의 발전보다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가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되기는커녕, 그 자체가 큰 문제 덩어리가 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도 도덕적⸱법률적으로 중대한 잘못을 한 정치지도자가 이를 인정하거나 고치기는커녕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잘못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앞 정권의 비리나 정치인들의 혐의가 드러날 때마다 소속 정당은 정치보복, 표적 수사, 검찰 공화국이라며 논점을 흐리게 만든다. 똑같은 사안이라도 처지가 바뀌면 안면을 완전히 바꾸어 공격 수위를 높인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 ‘내가 하면 민주, 네가 하면 독재’, ‘내 편은 팩트, 네 편은 가짜뉴스‘라는 논리로 비약한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정치인을 매우 보기 힘들다. 진영논리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나 피해자가 될 것 같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해 일단 우기고 보자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 심화하는 것 같다. 진영논리가 정치 양극화를 가져오고 있다. 하나의 나라에 국민이 두 편으로 갈라져 상대방 얘기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같은 정당 안에서도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고 한다. 예컨대 한 야당 원로가 “민주당 정치인들을 만나면 개딸(이재명 대표 극렬 지지자들)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정쟁화되고 있는 것 같다. 정치 갈등이 사회불안과 정치 후진국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으며, 국가적 리스크가 되고 있으니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치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자기성찰과 잘못은 솔직히 인정하고 고쳐나가는 용기가 뭣보다 중요하다. 잘못을 범하면 즉시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過則勿憚改)라는 2500년 전의 공자의 말씀을 항상 되새겨야 한다. 아울러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님의 이런 말도 꼭 명심해야 할 줄 안다. “자기 잘못을 모른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국민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비생산적이고 불합리한 국회의 운영과 국회의원들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희망의 정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토끼의 해, 계묘년에는 한국의 정치문화가 한 단계 높아지고 이를 통해 국운이 융성하는 해가 되길 기원한다. ‘과이불개’가 정치권 전체의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개과천선(改過遷善)’으로 승화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2023.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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