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공동체’실현 가능성에 대한 고찰

[산학칼럼] 201910월호(통권 342호)
박병구
경북대학교 중국 문화와 통상 융합전공 교수

국제질서와 미·중 관계

20세기 국제질서는 세 차례의 대변혁을 거쳤다. 첫 번째는 1차 세계대전 후, 독점자본주의·제국주의 질서가 붕괴되고 소련의 사회주의가 탄생하였다. 두 번째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미국은 전후에 전개될 또 다른 전쟁, 경제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후 미국이 수립한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 system)에는 IBRD·IMF가 대표적인 기구로 자리 잡았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사회주의 진영 간의 냉전이 형성되었다. 세 번째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산되며, 양극 세계가 종식되어 다극화로 나간 것이다. 국제 협력은 철저한 이익의 교환이며, 국제질서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구조이다.

이는 패권안정론의 근거이다. 마르크스는 국내에서의 금융독점이 가져오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레닌은 국내 금융독점자본주의가 국제로 확산되어 국제금융독점 현상을 비판하였다. 현재 세계는 자본의 국제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무산자 계급의 국제화와 연대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초강대국이다. 미·중 관계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국제관계는 고도의 게임이므로, 국제관계에서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관계가 극도로 긴장관계로 흐를 때에는 모든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의 의의가 커지게 되며, 아주 사소한 사건에 의해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기도 한다.

1962년 쿠바사태 당시 중국 민중들은 쿠바 국기를 흔들고,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 마네킹을 질질 끌고 다니며 미국을 조롱하였다. 그러나 미·중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 양국 간의 핑퐁게임은 긴장관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미·중 간 모순 발생의 근원은 상호 신뢰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동종(同種) 앵글로색슨 미국의 부상을 인정한 반면, 중국의 부상을 지지하는 아시아의 동종(同種) 국가는 없다.

 


유럽 질서와 유럽연합(EU) 탄생 배경

권세‘권(權)’자의 함의 중 하나는 ‘임시변통’(權宜, 變通)이다. 국내 정치권력이든, 국제 패권질서이든 권력의 역학관계는 항상 변한다. 서로마가 멸망 한 후, 서유럽은 분열되고 중세는 암흑기로 접어들었으며 유럽 문명은 후퇴하였다. 서로마가 멸망한 후, 통일된 권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동로마가 멸망한 후,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부상하였다. 유럽의 군주 권력은 언제나 절대적인 권력이 아니었으며, 교권(敎權)과 시민계급의 견제를 늘 받았다. 중세 유럽은 귀족·교권·시민계급이 국왕의 권한을 제약하였다. 국왕은 재정을 시민계급의 납세에 의존했고, 국왕의 권력과 재정은 비례하였다. 국왕의 재정이 풍부할 경우에는 국왕의 권력이 강했으며, 역으로 재정이 빈곤할 때에는 국왕의 권력은 약화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통일 후, 국제무역이 발전하게 되었다. 중세기 말, 국가 통일을 가장 먼저 이룬 나라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국가 통일 후, 종교전쟁으로 무슬림과의 육상 교통로가 막힘에 따라, 신항로 개척과 지리상의 발견을 이루었으며, 해상 무역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해외에서 벌어들인 금은을 축적하지 않고, 낭비를 한 결과 해상패권이 네델란드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영국의 부상 배경은 네델란드와 연합하여 스페인의 무적함대·해상패권을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상업은 물류의 흐름을 중요시한다. 영국은 해상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을 투자와 산업혁명으로 연결시켜 제조업이 부상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었기 때문에 대영제국으로 부상하였다. 프로이센은 덴마크·프랑스와 전쟁을 벌인 뒤, 오스트리아와 통일전쟁을 감행하였다. 프랑스와 독일은 세 차례 대규모 전쟁을 치렀다.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은 프랑스를 굴복시켰고, 1차·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침공하였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물자가 필요한 데, 특히 철강과 석탄은 전쟁 물자 생산에 가장 중요한 물질이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는 바로 석탄과 철강의 공동구입과 생산을 위해서 탄생하였다. 유럽연합은 주권국가들의 조직체이나, 경제 주권은 유럽연합에 있다. 특히 대외무역 정책은 유럽연합의 손안에 있다.

미합중국의 탄생과 유럽연합의 탄생은 성질이 다르다. 유럽은 근대 민족국가 성립 이래 전쟁이 계속되었으며, 두 차례 세계대전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유럽은 평화를 갈구하였고, 서유럽은 동유럽과 소련의 군사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에 유럽연합체 구성에 공감하였다. 유럽연합(EU)은 독일과 프랑스의 주도로 탄생하였다. 유럽연합(EU)의 법률은 구성원 국가들의 국내법보다 우위에 있다. 유럽연합(EU)은 경제적 차원에서 강력한 중앙기구가 있고, 분쟁 해결을 위한 사법기구도 있으나, 공동의 군대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

 


중국의 글로벌 리더십 자격 문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약속할 기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부터 파악하는 것이 순서이다. 베트남전쟁(1955~1975)이 발생했을 때, 북월맹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마치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항미원조(抗美援朝)의 명분으로 개입한 것과 같이 중공은 북월맹에 수십만 명의 군인을 파견·지원하였다. 당시 소련과 중국은 북월맹에 전쟁 물자를 공급하였다. 베트남전쟁 종전 후, 1980년 대, 중국과 주변국가 관계의 일반적인 특징은 첫째, 중국은 베트남을 제외하고 모든 주변 국가와 관계를 우호적으로 개선하였다. 비록 중국과 싱가포르·한국은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았으나, 민간 형식의 교류는 증가하였고, 경제 무역관계가 급속히 발전하여, 외교관계 수립의 기초를 다졌다. 둘째, 경제요소가 중국과 주변국가와의 관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차 상승하였고, 경제무역 관계가 중국과 주변국가와의 발전에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셋째, 1982년 후, 중국은 ‘독립자주 평화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고, 개혁개방·경제발전에 유리한 환경 조성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다. 미·소 냉전 해체 후, 경제적인 상호 연관과 의존이 강력한 지역 공동이익을 형성하였고, 이것이 동아시아가 협력을 강화하는 내적 기초가 되었다.

지금 세계는 중국이 과연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였는데, 외부 세력의 간섭이 중국의 분열과 혼란을 야기하였다는 피해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후, 불과 30년 만에 경제발전과 세계 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비록 중국이 외교적으로 많은 국가와 전략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하였으나, 중국 외교는 고독하고 외롭다. 중국은 상해협력기구 구성국들과 반테러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데, 동서남북 4방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어, 주변 국가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비교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인도·베트남·필리핀 등과는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반도가 통일 된 후, 한반도와 중국은 분명히 영토 문제가 출현할 것이다. 압록강 주변과 서해 영토 문제는 통일 한반도의 뜨거운 감자이다. 중국은 통일 한반도가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베트남은 1976년 7월 2일 통일 후, 1979년 중국과 전쟁을 벌였다.

일반적으로 약소국은 강대국의 힘에 의존해 안보를 보장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싱가포르는 화인(華人) 국가로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과 군사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미·중 양측 모두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지역경제 협력의 구조이다. 한국과 일본은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시아와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 일본 경제가 동아시아를 주도하던 시절은 1980년대였다. 21세기 현재는 중국이 동아시아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의 대외무역 가치사슬은 일본·한국·대만으로부터 자본·기술·설비·첨단제품을 수입하고, 홍콩·싱가포르로부터 금융과 법률 서비스를 도입하며, 동남아시아·호주로부터는 자연자원·에너지를 도입하여 중국 본토에서 가공해 유럽·미국 등으로 수출하는 구조이다. 중국은 세계 5위의 해외 투자국이나, 주로 국유기업이 호주·브라질·캐나다의 석유와 광산 자원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의 저렴한 공산품이 미국의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높이나, 역설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의 산업 공동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 역시 세계화 현상의 두 얼굴이다. 현재 중국은 자신의 경제 성장을 어떻게 재조정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향후에는 민간 기업의 해외 진출과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지금까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투자는 영국이 가장 먼저 투자하였고, 그 다음 일본과 한국이 뒤를 이었으며, 최근에는 중국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 부상의 배경 하에, 일본은 동아시아 경제 주도국로서의 지위가 많이 퇴색되었다. 일본은 상대적 국력 하락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으로써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론’등장 배경과 실현 가능성

1997년 12월 15일, ASEAN+한·중·일 지도자(당시는‘9+3’) 비공식 정상회담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다. 이 지도자 회의의 주요 의제는 21세기 동아시아의 발전 전망, 아시아 금융위기, 지역경제의 연계·심화였다. 당시 ASEAN(동남아시아 국가연합.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은 중국 경제의 급속한 부상이 ASEAN의 제조업과 해외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ASEAN이 탄생한 배경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과 중국의 영향력 확산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ASEAN은 한·중·일 3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서 지역경제의 안정성을 증가시키고, 조속히 위기에서 벗어나길 희망하였다. 이것이 바로 ‘10+3’협력 진전을 가속화시켰다. 2000년 말, ASEAN+3 수뇌회담에서 주룽지(朱容基) 중국 총리가 중국과 ASEAN의 자유무역지역 건립 가능성을 타진하였으며, 2001년 11월, 브루나이에서 거행된 제5차 ASEAN+중국 지도자 회의(10+1)에서 10년 내에 ASEAN+중국 자유무역지역을 건립하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동아시아 공동체’개념에 대해 논란이 많다.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동아시아가 정치·경제·안보·문화 등 각 방면에서 중장기적인 협력 문제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즉 미래의 동아시아 협력에 대한 청사진이다. 경제관계의 기본은 상호 win-win이다. 국제 지역경제의 변화는 지정학 정치에도 영향을 준다. 동아시아는 경제 활력이 충만한 지역이다. 고투자율과 고저축율이 동아시아 경제 성장의 원천이다. 동아시아 경제 성장의 기초는 수출 주도의 발전 전략이며, 선(先)경제발전·후(後)정치민주화를 추진하였다.

동아시아는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다. 동아시아는 정부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였다. ‘동아시아 공동체론’은‘ASEAN+3(한·중·일)’구도를 ‘동아시아 공동체’수립의 중요한 기제로 삼고자 한다. 유럽연합(EU)은 지역 협력체가 단일 조직으로 발전된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험을 동아시아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동아시아 국가 간 정치·경제·종교 등 방면에서의 거대한 차이는 지역공동체 수립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실례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이 서장(西藏) 인권 문제로 인해 영향을 받은 것은 국제 체육행사가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된 사건이다. 한·중·일의 양자관계는 많은 문제를 잉태하고 있으며, 특히 동아시아에는 2차 세계대전 후, 미제 해결인 역사·영토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의 전략 과제

하나의 국가가 어떠한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먼저, 한국은 미국·중국 등 한반도 주변 4강의 이중적 잣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강대국은 국제관계에서 항상 두 개의 카드 혹은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상대를 대한다. 국가 간의 긴장관계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흐르는 오판을 막기 위하여 핫라인을 구축하기도 한다.

그 다음, 한국이 동아시아 국가들과 진정한 선린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고, 오로지 관광객들이 서울 명동·제주도 등지에서 돈을 얼마나 뿌리고 가느냐에 관심을 집중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한반도 주변 4강과 경쟁·협력을 통해 평화와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웅과 위인을 존경하고 선양하는 영웅사관이 주도하는 강세문화(强勢文化)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자살자를 과도하게 위안하고 동정하는 약세문화(弱勢文化)가 주류인 국가는 미래의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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