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물욕(物慾), 문화와 제도, 그리고 중국 현상

[대덕단상] 201908월호(통권 340호)
박병구
경북대학교 중국 문화와 통상 융합전공 교수

인간의 물욕(物慾)과 부패

모든 인생은 추구하는 가치가 있고, 한 사람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이 있다. 인생은 과학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며, 행복도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누가 돈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개인 사정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도덕과 윤리라는 공식(共識)이 존재한다. 공직자의 윤리 공식은 견리사의(見利思義)이다. 인간은 왜,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만약 인간이 단지 생리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돈을 번다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 혁신적인 기업가는 투자를 위해서 돈을 번다. 반면, 천민자본가는 소비를 위해서 돈을 버는데, 그 소비는 자신과 가족을 위한 소비이며, 사회와 국가를 위한 투자가 아니다. 그들은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소비 편애는 좋은 자동차와 넓은 집을 위해, 양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손에게 유산을 남기기 위해 돈을 번다.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기 위해 부동산도 능력껏 구입한다. 그래서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다. 천박한 부자는 교양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돈만 남긴다. 부패한 사회는 부자도 도덕이 없고 빈자도 도덕이 없기 때문에, 도덕이 부자와 빈자를 구분하는 변수가 되지 못한다. 선진문명 사회에는 부자가 신의 박애정신을 대신하여 재산을 사회를 위해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현대화 초기 단계와 부패의 함수관계를 보면, 예외 없이 부패 현상이 나타났다. 만약 한 개인이 기업가로 변신하여 회사를 만들려고 한다면, 이것은 아주 좋은 현대화이다. 그러나 부패한 관료는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 정부가 사업권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기업가는 관료에게 뇌물을 바친다. 헌팅턴은 부패에 대한 청교도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패는 사회 폭력보다 더 좋다는 것이 헌팅턴의 생각이었다. 뇌물이 오히려 윤활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는 국가 조직을 붕괴시키는 침식(侵蝕) 작용도 함께 한다. 예를 들어, 중국 산서(山西) 성 태원(太原) 시 지진국(地震局) 산하의 공정설계연구원은 산서 성의 모든 고층 건물의 내진 설계를 실시하며, 학교와 병원 등 공공 건축물도 직접 설계·시공하고 있다. 지방정부 산하의 공기업은 수의계약으로 관급공사를 수주하고 쉽게 돈을 벌며 부패가 심각한 지경이다. 정부가 쌓아올린 재부는 갈수록 증대되고, 권력 자본의 폭리가 증가하고 있다. 주민 간, 업종 간, 도시와 농촌 간의 수입 격차가 확대되어, 재산은 소수자에게만 집중되고 있다.

 

서구와 중국의 통치체제 형성·내용

고대 로마의 집정관은 속도와 효율을 중요시하고, 원로원은 입법 기능을 담당하였다. 중국은 황제-관료의 중앙집권체제였고, 유럽은 황제-봉건귀족 간의 분권 구조였다. 유럽 봉건사회는 혈연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고 귀족이 관직을 담당하였다. 봉건사회에는 황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귀족은 또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는 행위규범이 있었다. 유럽의 사법부는 귀족의 제도였고, 보수적인 색채를 갖고 있었다. 유럽은 부와 권력을 가진 귀족이 관직을 담임하였으므로, 뇌물 수수에 익숙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귀족의 정신적 사명 노블리스 오불리제(noblesse oblige)가 나오게 된 것이다. 봉건제의 특징은 황제와 귀족의 공동 통치이다. 봉건 제도 유지의 매개변수는 황제가 영주에게 분봉한 토지이고, 유럽의 황제는 최대의 영주였다. 중국 황제는 명의상 국가의 모든 토지의 소유자였으나, 실제는 신민(臣民)에게 토지를 분배하였다. 유럽 봉건제 하에서는 출생 성분이 신분과 통치권을 결정하였다. 반면, 중국의 관료는 출생 성분과 상관이 없었다. 중국은 과거제를 통해서 누구나가 관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전형적인 관료제 국가였으며, 공직 담임의 자유와 평등이 유럽보다 먼저 실현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수재가 공직을 수행하면서 가진 권력만큼 부를 쌓았다. 중국의 부패한 관료들은 대다수가 빈민가 출신이며 반부패 이성이 결핍되어 있었다. 중국 백성들도 정의감이 부족하여 오히려 부패 기회의 불균등에 대해 분노하였다. 부귀영화 뒤에는 반드시 위기가 온다. 유럽 봉건왕조의 황실과 귀족들은 전쟁이 발발하면, 전장의 가장 일선에서 왕조를 보위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반면, 중국은 전란이 발생하면, 가난한 농민과 평민들이 전쟁터로 끌려갔으며, 황제와 관료들은 피난길에 올랐다.

중국 전통 왕조들은 문주군(文主軍) 국가였다. 그래서 중국은 왕조 시절부터 문관이 군을 지휘하는 행정 관료제도가 정착되었다. 이것은 현대 서방 국가의 문주군(文主軍)과 같은 체제이다. 미국의 국방부장관도 군인 출신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이다. 왜 서방은 민간인 출신이 국방부장관을 담임하는가? 국방부는 정부의 행정 영역이기 때문이다. 직업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관직을 담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전투는 군인의 영역이다. 군대의 국가화는 군인이 국내 내정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 공산당은 중국인민해방군을 당화(黨化)시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총서기가 중공중앙군사위원회주석을 겸임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당주군(黨主軍) 국가이므로, 누가 군대를 장악하느냐가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될 수 있는 중요 변수가 된다. 또 중국 공산당이 제1 정부가 되었으므로, 공산당의 집권은 인민의 투표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2000년 8월 16일, 미국 콜럼비아방송국(CBS) ‘60분’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은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공중앙위원회를 선출한다. 중공중앙위원회에 정치국이 있고, 이 정치국 안에 또 상무위원회가 있으며, 중국 국가주석도 상무위원 중 한 명이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그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유형에 의하면 중국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7인의 과두제 통치체제이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서 연방 상하원 의회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반면, 중국은 7인의 상무위원이 규칙을 정하고, 중국의 운명을 결정한다.

 

권력 제한과 중국 현상

모든 정치체제에는 권력을 제한하는 방식이 있다. 유가와 법가는 모두 황권을 견제하였다. 맹자는 군주에게 도덕을 각성시켰다. 그러나 군주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덕을 악용할 경우에는 국정이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유가는 군주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주장하고, 내성외왕(內聖外王: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를 설파하며, 요순(堯舜) 임금을 본받도록 하였다. 법가는 군주에게 이법치국(以法治國)을 요구하며, 군주가 같은 상황에서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견제하였다. 중국의 어떤 군주도 임의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유가는 농민에게 무능한 폭군을 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민본 사상의 핵심적인 가치는 백성을 먹여 살리는 양민(養民)이다. 민본은 양민을 통한 관민(管民)이고, 민주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서방의 군권신수는 신이 황제에게 권력을 수여한 것이고, 중국의 군권(君權)은 천명(天命)이 먼저 민중에게 권력을 준 다음, 덕(德)과 인(仁)을 겸비하여 안민(安民)을 실행하는 군주에게 다시 그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만약 군주가 폭군이 되면, 군권을 다시 회수하였다.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부터 정치체제의 변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낭만적 가설은 모든 인민은 실수를 할 수 있으므로 정치 참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의 정치 모델은 공산당의 인민 동원이지,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었다. 마오쩌둥 시대는 공학 전문가를 중점 육성하였고, 정치학 등 사회과학 전공자를 배척하였다. 이유는 사회과학 지식인의 자유화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서방은 민주 제도 하에, 정당들이 국민의 신분과 입장에서 민의를 수집한다. 그래서 “내가 유권자 여러분들의 민의를 잘 대변하니, 다음 선거에서 표를 주십시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권력의 합법성이 총구에서 나오며 정당 간 경쟁이 없다. 중국 공산당이 절대 다수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공이익에 대한 다수 인민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민주 선거이다. 민주 선거에 대한 제도와 기제가 완비되었을 때, 중국 공산당이 인민의 투표로써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다수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민의는 정부에 대한 요구이다. 수요는 경제학의 개념이고, 요구는 정치학의 개념이다. 정치체제 혁신의 관건은 참여의 확대이다. 국민은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각성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정치 참여를 요구하지 않으면, 정치 권력층은 정치권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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