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경제 개발 과정·모델에 대한 소고(小考)

[대덕단상] 201907월호(통권 339호)
박병구
경북대학교 중국 문화와 통상 융합전공 교수

1. 서론

국민은 항상 묻는다. “국가는 무슨 근거로 나를 통치하는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와 역할은 국민을 제대로 통치할 능력이 있는가? 즉 통치 수준에서 출발한다.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은 국가 지도자의 통치 수준은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수요를 국가가 공급할 능력이 없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을 때 혁명(革命)이 일어난다. 역사적으로 억압받던 한반도의 민중들 심중에는 항상 혁명대망(革命大望)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왕건이 고려를 창건하였으나, 왕건의 신분이 호족에서 국왕으로 변하였을 뿐, 정치체제는 신라와 마찬가지로 전제군주제였다.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였으나 정치체제는 여전히 전제군주제였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구조는 변하지 않았으며, 신분 상승과 계층 간 이동도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이성계의 조선 창업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아니라 역성정변(易姓政變)이었다. 20세기 대한민국의 박정희는 교육을 통해서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의 한(恨)을 경제 성장과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필자는 박정희 경제 개발 과정·모델을 개괄하고자 한다.

 

2. 박정희 경제 개발 과정·모델

1) 실효성 있는 정부를 수립하였다
조선 사회는 인맥관계가 개인 발전에 중요한 변수였으며, 개인의 능력과 개성·독립성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였다. 조선 왕조는 관료가 가족의 이익을 위해 공무를 빈번히 집행하였으며, 부패가 생활 속에 뿌리내린 ‘부패민속국가(腐敗民俗國家)’였다. 한국은 해방 후, 국가도 약(弱)하고 사회도 약(弱)하던 시절, 정부가 국민의 수요를 만족시키고, 공공이익을 보장하며, 내부 모순과 갈등을 통합할 능력도 없었다. 비록 개방을 하였으나 사회는 여전히 폐쇄적이었으며, 지도층과 지식인들은 상공인을 무시하였다. 한국인에게 창조적 능력이 부족한 이유는 한국 사회가 능력사회가 아니라 권력사회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효율적인 관료제를 확립하고 실효성 있는 정부 조직으로 개혁하였으며, 공무원의 현명함을 활용하여 치국하였다. 소극행정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한다. 반면, 적극행정은 정부가 주동적으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는다. 관료가 욕먹기 싫어하고 호인(好人)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 잡혀있으면 쉽게 부패한다. 박정희는 정책결정을 집중하면서도 경제 정책이 정치인의 권력투쟁에 휘둘리지 않도록 관료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하였다. 박정희 경제 개발의 핵심 부서였던 경제기획원도 철저히 공익을 우선하였다.

2) 민족국가를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민족국가(民族國家)란 국민이 가족(家族)에 대한 사랑을 민족(民族)과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범위를 확대하여 가족의 이익보다 민족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다. 민족국가는 외부적으로 타국과 경쟁·협력관계에 있고, 경쟁을 통해 국가 안보를 지키고 본국에 유리한 국제 환경을 조성하며 영향력을 확대한다. 민족국가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동의 언어와 심리적 유대감·공동의 시장이 필요하다. 민족주의의 핵심 요소인 민족 감정은 민족 집중 지역에 거주하는 구성원들의 정체성이다. 박정희는 1962년 2월 출간한 『우리 민족의 나갈 길?사회 재건의 이념』에서 ‘인간 개조의 민족 과제’,  ’한민족 고난의 역정’, ‘우리 민족 과거에 대한 반성’, ‘사회 재건의 이념과 철학’등 6개 부문에 걸쳐, 민족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세계는 어떠해야하고, 어떤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이다. 박정희는 국민에게 “왜(why) 우리가 경제 개발을 해야 하고, 경제 개발을 위해 국가와 국민은 무엇(what)을 해야 하며, 어떻게(how to) 경제를 발전시킬 것인가”등 전략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3) 선(先) 경제, 후(後) 민주 모델 추진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과 후발개도국은 권력의 분산과 집중에서 차이가 있었다. 선진국은 초기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고, 이견을 반영하는 민주 절차가 있었으며, 권력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졌다. 반면, 후발개도국은 선진국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 사례를 학습하여 효율과 집중을 강조하고, 취사선택의 불균형발전전략을 선택하였다. 선(先) 경제 후(後) 민주 모델을 선택할지, 선(先) 민주 후(後) 경제 모델을 취할지 여부는 지도자의 전략적 선택에 달려있다. 박정희는 선(先) 경제 후(後)  민주 모델을 선택하였고, 인도(印度)는 선(先) 민주 후(後) 경제 모델을 취하였다. 서구는 자유·자본주의를 통해서 현대화를 추진하였고, 박정희 경제 개발 모델은 국가주의와 시장경제를 융합한 국가자본주의이다.
전략적 사고는 조직이 처한 환경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설정한 미래의 목표와 목적에 대한 가치취향이다. 대단히 완벽하게 설정된 가치의 연결이 전략이며, 이를 위해서는 분명한 목표의 취사선택이 중요하다. 취사선택은 상호성 즉 상호 변수를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애용한 무소위이위(無所爲而爲)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무슨 심오한 목적을 위해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자체가 곧 그 자체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상상 속의 정치나 모호한 공담(空談)을 배제하고, 주체성을 가지고 실천적 지도력으로써 한국을 개조하였다. 박정희는 옳고 그름의 백가쟁명을 초월하여, 한국을 설계하고 발전시키는 기술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하였다.

 

3. 결론

한국 정치계는 박정희가 정치와 도덕을 분리한 점에 초점을 두고 박정희의 경제 개발을 개발독재로 폄하하고 있다. 박정희 경제 개발 모델을 철저히 학습하고 모방한 덩샤오핑은 중화문명사와 세계사의 전환을 가져온 위인이고, 박정희는 개발독재자인가? 박정희 이후, 한국 정치계는 국가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미래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경세가(經世家)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계는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사고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에서 제도와 발전 모델이 형성된 배후를 이해해야 한다.




사업자등록번호: 502-82-12124 | 법인등록번호: 174121-0000568 | Tel: 053-959-2861~2 | Fax: 053-959-2860
법인계좌번호: 대구은행 018-04-304943-001(예금주-산학연구원) | E-mail: uri@uri.or.kr | A
Copyright(c) 2004 University-Industry Research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