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인재 블랙홀’이 된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전략과 각국의 대응

[경영기술정보] 202010월호(통권 354호)
박지은
연구원(KIST 미래전략팀)

지난 1월 나노기술의 최고 권위자로 칭송받는 하버드대 찰스 리버 교수가 중국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연구비를 미국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리버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국방부로부터 1500만 달러(약 176억 원)에 달하는 연구비를 지원받는 동시에 중국 정부의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계획(千人計劃)에도 참여하며 수백만 달러를 지원받아 중국 우한 이공대에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우한 이공대 소속으로 논문을 발표하고 특허를 등록하는 등 대리인 역할을 해왔으나 이 사실을 미 정부에 은폐하고 허위 보고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 정부와 과학계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중국 정부와 연계된 사실이 드러나 해임된 과학자는 여럿 있었으나 비중국계 학자로는 이번이 최초 사례인데다, 리버 교수는 논문인용 횟수 세계 최다 화학자로 그의 연구가 테슬라의 의료전문 연구법인 뉴럴링크(Neuralink)의 탄생 배경이 되었을 만큼 미국 내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리버 교수 사례 외에도 미국 전투기 엔진 관련 데이터 유출,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 연구진의 특허 테스트 물질 유출 등 연구기관의 기술 유출을 여러 건 적발하게 되면서 서둘러 국가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현장에서의 기술 유출이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최근 KAIST의 한 교수가 2017년부터 중국 천인계획에 외국인 전문가로 참여하며 자율주행차량 첨단 기술인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기술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라이다는 레이저 광선을 이용해 사람의 눈처럼 주변을 인식하는 장비를 만드는 기술로 10여 년 후 시장규모가 1300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핵심기술 중 하나이다.

리버 교수와 KAIST 사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천인계획’은 중국의 공격적인 해외 고급인재 유치 정책이다. 2008년 중국 공산당 중앙판 공청이 ‘10년 내에 중국 유학파 인재 2000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의 천인 계획에 참여하는 연구자에게는 ‘국가 공인 전문가’ 칭호를 부여하고 최대 100만 위안(약 1.7억) 규모의 예산을 지원했다.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국가적 인재 1만 명 양성을 위한 ‘만인계획(萬人計劃)’을 2012년에 도입했다.

만인계획은 인재를 노벨상 수상이 기대되는 세계적 과학자 100명, 국가적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필수요원 8000명, 발전 잠재력이 큰 35세 이하의 젊은 인재 2000명 등 세 그룹으로 구분하여 관리하며, 참여연구자는 지원받는 연구비로 본인이 원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연구하되 번잡스러운 보고는 모두 면제되는 등 최고 수준의 연구환경을 제공받는다. 이러한 파격적인 지원은 중국 정부의 의도를 잘 모른다면 연구자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과학기술 두뇌 영입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공격적이고 체계적이다. 국적·나이 불문 최고 학자들을 중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 정부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 600개의 인재영입기구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호주 국방안보분야 국책연구소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정부는 외국 학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대학·연구기관·향우회·우호협회 등을 통해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 ‘산업 인재맵’을 제작해 전문가 650만 명과 AI 전문가 44만 명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매년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교수와 대기업 임원의 명단을 업데이트하는 등 은밀하지만 체계적인 방법으로 글로벌 인재 영입 계획을 수행 중이다.

블랙홀처럼 전 세계 인재를 빨아들이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을까? 미국 백악관은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주도하여 JCORE(Joint Committee on Research Environment)를 발족, 작년 5월부터 국가 연구자산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을 추진 중이다.

에너지부와 국립과학재단은 같은 해 6월부터 소속 직원과 파견 근무자에 대해 해외 정부 인재 유치 프로그램 참여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의회 또한 대학 내 스파이 위협 해결을 위해 미국 과학 기술 보호 법안(Securing American Science and Technology Act, Protect our universities act)을 발의해 민감연구 과제목록을 유지하고, 유학생의 민감연구과제 참여를 제한하는 등 자국 기술과 과학자 보호를 위해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중국의 과학기술 두뇌 영입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공격적이고 체계적이다. 국적·나이 불문 최고 학자들을 중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 정부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 600개의 인재영입기구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본 또한 중국 천인계획을 포함한 해외 인재 유출 프로그램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 등 정부 기관들이 주체가 되어 2022년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모든 연구실의 해외 자금 지원을 조사할 계획이다. 대학 연구실은 주요 연구자의 해외 기관 겸직 여부와 해외기관의 연구자금 지원 등에 대해 공개해야 하며, 연구실 소속 외국 국적 연구자의 연구 이력과 기술유출 방지 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하는 방안 또한 검토 중이다.

유럽은 AI 분야 인재 유출 방지를 위해 ELLIS(European Laboratory for Learning and Intelligent Systems, 유럽 미국기업으로의 AI 과학자 유출을 막기 위해 설립한 다국적 AI 연구소)에 2019년부터 약 2000억 원을 투자하여 소속 연구자들에게 파격적인 연구비와 높은 급여를 제공할 예정이다.

우리 과학기술은 해외 선진 기술을 모방하면서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압축적으로 성장했다. 외국 것을 들여오고 습득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는 자국 기술과 연구자에 대한 보호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과학기술 발전 전략이 2000년대 들어 추격형(fast-follower)에서 선도형(first-mover) 전략으로 전환하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대형 2차 전지 등 일부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1위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자국 핵심 연구자와 원천기술 보호에 대한 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산업 기술보호법, 대외무역법, 과학기술기본법으로 보호제도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나 기업과 산업기술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연구기관에서의 기술과 연구자에 대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 우리도 이제 연구자의 연구의욕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핵심기술과 연구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출처 : KIST, 「TePRI Report」,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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