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건강코너

믿음에 관하여

[자연건강코너] 200905월호(통권 217호)
신승열
제일한의원 원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한다.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하나를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은 판단을 근거로 하고 판단은 앎을 근거로 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앎이 완전한 것이라면 그 결정도 완전할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라면 판단과 선택과 결정이 순서대로 그릇되고 말 것이다.

빨간 사과의 색은 빨간색이다. 사과의 색이 빨갛게 보이는 것은 일곱가지 빛 중에서 빨간빛은 반사하고 나머지 빛은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간 사과 속에는 유일하게 빨간 빛만이 없다. 그래서 빨간 사과는 빨간빛이 부재한 사과이다. 이것을 우리는 빨간 사과라고 부른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바란다. 불행은 피하고 싶어 한다. 행운이 오면 그것을 붙잡아 묶어두고 싶다. 그러나 행운은 지속되지 않는다. 만약 지속된다면 이 행운은 행복이 아니라 지루함으로 바뀐다. 지루함은 행복이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행복이 필요하다. 새로운 행복은 불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불행을 극복해야 만이 새로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불행 없이는 행복을 키워낼 수 없다. 불행 속에 무수한 행복의 씨앗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은 행복의 반대가 아니라 행복을 만드는 원재료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행복을 얻기 위하여 불행을 피하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지식에는 전체성이 결여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앎은 매우 불완전하다. 자신의 지식이 불완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인정하기 싫어한다. 다는 몰라도 적어도 어느 한 두가지 지식은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면 완전한 앎의 기회가 열린다. 

믿음-新, 信, 神, 身
믿음은 내가 확실히 알 수 없는 것, 혹은 모르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앎이다. 지식은 과거의 사실이다. 현재는 알듯 모를 듯 하고 미래는 완전히 모른다. 그나마 우리가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 관한 사실이다.

새로움(新)이란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새로움(新)을 희망한다. 새로움이란 전체성, 완전함을 근거로 했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함에 근거한 앎이 필요하다.

인간은 전체에 대한 지식을 완벽하게 지닐 수 없다. 전체에 대한 지식을 지닌 존재가 있다면 그를 우리는 뭐라 명명해야하나? 이를 이라고 하자. 神이란 글자를 풀어보면 보일示에 납申이다. 申은 절구(臼)에 공이(l)를 찧는 모습이다. 절구에 물건을 넣고 공이로 찧으면 내용물이 새로워(新)진다.

남자가 여자의 절구에 공이질을 하면 새로운 생명이 창조 되듯이. 신은 전체이기에 완전하며 그래서 창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완전함에 대한 인식 그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신(神)으로부터 와야 완전해 질 수 있다. 

현재는 과거가 아니다.
미래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가 만난 접점이다.
접점,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닿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
과거는 부분이다. 미래도 부분이다.
과거와 미래가 모두 존재하는 현재는 전체이다.
우리는 시간의 전체인 현재에 살고 있다.

결정을 내려야하는데 믿음이 필요한 이유는 지식은 부분개념이고 믿음은 전체개념이기 때문이다. 부분인 과거와 미래로 전체인 현재를 결정할 수 없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섣부른 예측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 현재를 결정하면 무조건 실패한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매순간 믿음을 근거로 판단을 내린다.

믿음에 근거한 생각 즉 신념이 나의 현실을 결정한다. 내가 믿는 것이 나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믿느냐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믿음에 관한 가르침이 인간사에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이 된다. 으뜸 되는 가르침, 宗敎이다.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지식을 넘어선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이 완전함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므로 을 필요로 한다. 神은 완전한 것이며 그것의 전형이 유전정보의 형태로 나의 몸()에 심어져 있다. 나의 뇌에 장밋빛미래로 나를 인도해줄 신의 의지가 씨앗의 형태로 전해지고 이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으면 올바른 선택이 된다는 것이 믿음(信)이다.


聲氣願으로 禱하면 絶 親見이니 自性으로 求子하라 降在以腦이니라.

우주는 거대한 하나이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진 지성체이다. 이를 신이라고 한다. 사람의 몸에는 60조개의 세포가 있다. 이 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몸(身)을 구성한다. 몸의 구성 원리인 유전자 정보(DNA)는 60조 세포 하나 하나에 심어져있다.
하나의 세포에 몸 전체의 정보가 들어있다. 이것이 우주전체 정보인 신의 의식이 신의 한 세포인 우리의 몸에 들어있다는 증거이다. 우리의 몸()에는 의 정보가 DNA 형태로 들어와 있다.

원하는 바를 소리와 기운을 사용하여 기도해서 나의 불완전한 지식을 끊어버리면 내안에 있는 신의 유전 정보가 나의 마음을 신의 의지와 결합시켜 씨앗의 형태로 만들어 나의 뇌에 각인 시켜 준다.

어디까지나 씨앗의 형태이다. 씨앗은 심어서 싹을 틔워봐야 그 모양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씨앗에 대한 나의 신념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싹을 틔울 수도 그냥 버릴 수도 있는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誠者는 衷心之所發이요 血性之所守라.
속마음이 안내하는 바를 나의 이성으로 고스란히 받아 끝까지 지키는 태도를 정성이라고 한다.
나의 지식은 불완전 하지만 신의 의식은 완전한 것이다. 새로움을 희망하는 나에겐 완전한 지식이 필요하다. 신의 의식을 나는 알 수 없지만 신은 내 안에 있다. 숲을 보자면 통으로 봐야하고 나무를 보려면 세밀하게 봐야한다. 전체는 직관으로 봐야 하고 부분은 이성으로 살펴야한다. 직관은 지식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근거로 한 것이다. 즉 이다. 感이란 衷心이다. 속마음이다.

나의 마음이 우주심과 만나서 부딪혀(衝)결합한 상태(충심)이다. 즉 나의 마음과 우주의 마음이 결합하여 모든(咸)것을 통과한 마음(心)이 감이다. 나와 신이 공동으로 창조한 결과이다. 나의 기도를 신이 받아서 우주적인 관점으로 승화시켜준 것이다. 이것이 감이다. 속마음이다. 충심이다. 직감이다.

이 감이 바로 위의 自性求子의 子, 씨앗이다. 이 씨앗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여 끝까지 지키는 마음이 誠이다.
이란 글자를 풀어보면 말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誠에서 사용된 言이 바로 씨앗이다. 말이 씨앗이 되는 것이다. 이 씨앗을 인간과 신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이다. 이 말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내 마음에 있는 속마음이 바로 이것이다. 말씀, 말이 씨앗으로 쓰임이다.

信者는 天理之必合이요 人事之必成이라
씨앗이 되는 이 말을 내가 그대로 내가 받아서 똑같이 말하면 나의 말은 천리에 정확히 부합되는 것이 되고 동시에 이 씨앗을 싹틔워 내 뜻대로 키워낼 수 있다. 믿음이란 속마음을 천리에 정확히 합당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나의 판단의 근거로 삼으면 나의 미래는 반드시 장밋빛이 된다는 확신이다. 이란 말을 풀어보면 사람이 그 말을 말하다 이다.

愛者는 慈心之自然이요 仁性之本質이라
신이 나의 마음에 응하는 태도의 본질은 기르는 마음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신의 뜻에 부합되도록 승화시켜주는 것이 우주의 자연스런 태도이다.
우주의 목적은 스스로를 기르는 것이고 그러하기 위하여 각 구성원의 뜻을 전체의 뜻에 잘 부합되게 조정하고 승화시켜 하나하나를 사랑으로 길러주는 것이다. 내가 너를 길러주는 것이 곧 나를 기르는 것임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어진 이 마음이 모든 사람의 본성이다. 이것이 내안에 신이 들어와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래서 사랑이란 우주가 나를 길러주고 내가 너를. 네가 나를 길러주는 자연스런 모습이다.


내가 願하는 것은 不在한다. 그것이 현재 나한테 있다면 가지려고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하게 된다.

나에게 없는 것을 계속 바라고만 있다면 영원히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원한다 해도 나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원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求해야한다. 구하면 된다. 구한다는 것은 그것이 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내 밖에서 찾으면 어렵다. 내가 원하는 것의 완성품을 밖에서 찾았다 하더라도 그 것을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마련하는 문제가 또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 대가를 찾아내야 한다. 밖에서 찾는 것은 끝없는 방황이 되고 만다. 결국 내 안에서 해결해야한다. 내가 만들어내야 한다. 또 어떤 것은 아예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다. 이 역시 내가 만들어 내야한다.

창조해야한다. 내 안에서 구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현재 나에게 없다. 그래서 이것을 얻으려면 내 안에서 구해야 하고 그것은 곧 창조를 의미한다.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신은 창조의 근원이다. 이 신의 원형이 내안에 들어 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신은 잘 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의 신은 답을 가지고 있다. 신은 그 자신 스스로를 위해서 나를 길러 주려한다. 그래서 나의 속마음을 통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씨앗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씨앗을 받아 정성과 믿음으로 길러내면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게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濟者는 德之兼善이요 道之籟及이라
모든 것이 나와 더불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 이다.  연결된 것이 아니라 분리되어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 이다. 이 악이 분리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틀림없이 내면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이다. 을 통해서 내면의 신성을 받아드리고, 을 통해서 이것을 확신하면 삶에서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완벽함속에서 다가오고 있다. 그 중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있었다면 그 일은 나에게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것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감사이다. 받아드림은 감사이고 그 결과는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사랑은 풍요이다. 이제 남은 일은 이것을 누리는 것이다. 풍요를 주변과 더불어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이다.
으로 말미암아 지를 얻고 지혜로 말미암아 큰 능을 얻으니 이 영향력이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번져나가게 된다. 사업은 덕과 혜로 얻은 능력으로 나와 주변을 구제하는 일이다.

<참고도서> 三一神誥, 參佺戒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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