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아직은 더 일을 해야죠 -<천일장갑> 김원수 회장을 찾아-

[만나봅시다] 201401월호(통권 270호)
일시 : 장진수
대담 : Life Tour Guide

대여섯 평은 됨직한, 아파트 거실만한 회장실에서 4, 5분쯤 기다리자 김원수(金元洙)회장이 얼굴을 내놓는다.
수인사를 치르고는 바로 물어보았다.

“회사의 사훈 같은 건 없습니까?”

잠시 기다리면서 사방 둘러보았지만 그런 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가훈 있는 집이 있습니까. 세상이 자꾸 변하는데 그런 거까지 만들어두고 거추장스럽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사훈 같은 것을 안 만들게 된 까닭이란다.
150여명이 사원을 거느린 회사라면 그런 게 있을 법도 한데 없다고 한다.
하긴 요즘 대기업에도 그런 건 없는 게 추세다. 그런 것이 오히려 사원들의 창의력 개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라고들 했는데 여기에도 그런 게 적용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신에 <福地法家>라는 행서체 액자 하나가 보인다. 홍강선생의 글씨다. 홍강은 대구에서는 꽤 알려진 서예가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그쪽으로 흐른다.

“홍강은 나랑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여기에 와서 놀다가 같이 점심을 하고 갔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의 친구를 한번 돌아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福地法家>에 불교 냄새가 풍기는듯해서 혹 절에 나가느냐고 한번 물어보았다.

“아닙니다. 크리스챤입니다.”

묻는 이의 어림짐작이 빗나갔다.
성실한 크리스챤이라서 그런지 얌전한 몸가짐이라든지 단정한 매무새가 기업체를 이끄는 경영인이라기보다는 도덕 선생님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긴다. 음성도 조용하고 나직했다. 그러나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있다. 규모가 크나 작으나 CEO들한테는 그들 특유의 강단이라는 게 있는데 김 회장한테는 내유외강의 기운이 엇보인다.

대구시 서구 와룡로 70로 13에 자리 잡은 천일장갑(天一掌甲), 주식회사 천우(天友)텍스타일의 김원수 회장의 첫인상은 그렇게 풍겼다.

대구에는 장갑을 만드는 업체가 200여개쯤 되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업체라고 했다. 150여명이 3교대로 24시간 돌아가고 있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장갑의 종류는 25종, 그 중 기능성 장갑은 대부분 외국으로 수출한다. 기능성 장갑이란 날카로운 칼날 같은 물건을 만지더라도 손상이 생기지 않는 보호막 장갑이란다.

천일에서 만든 장갑을 이용하는 나라는 30여 개국으로서 미국을 위시한 주로 선진국들이라고 했다. 연 매출액은 약 50억원.

현관 로비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 회장이 악수하는 사진이 걸려있어 한번 안 물어볼 수가 없다

“저 사진은 웬 겁니까? 혹시 훈장이라도···.”

“아니, 훈장은 아니고 <3030 자랑스러운 시민상>에 우리 대구에서 다섯 명이 뽑혀 올라갔는데 그때 찍은 사진입니다.”
“<3030>이 뭡니까?”

“30명 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30년 이상 공장을 운영한 사람한테 주는 상입니다.”

듣고 보니, 말이 쉽지 중소기업으로서 그런 경영도 결코 쉬운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중소기업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지만 처음 시작은 67년도 부부 두 사람이 수동식 장갑기계 두 대를 가지고 시작했다고 했다. 자기는 장갑을 짜고 아내는 시장골목을 누비면서 팔았다는 것이다. 탄탄한 기업의 뿌리는 피나는 노력과 역경 속에서 자리 잡듯 천일장갑의 모태도 그렇게 싹이 텄다.

대구 침산동 모퉁이에서 2대의 기계가 지금은 850대의 자동식 기계로 성장한 것이다.

“무슨 일에든 운이 따라야하고, 기회가 주어져야만 일어날 수가 있는 거죠. 70년도 초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그때가 바로 우리한태는 대목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인부가 24시간 노동일을 하는데, 물건이 딸리는 거에요. 장갑은 그대로 소모품 아닙니까. 그때 재미를 크게 본 거죠.”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신명이 난다는 듯,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의미 있는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는다.

“IMF때는 어땠습니까?”

“우리 업무는 그런 거하곤 무관합니다. 아직 판로가 막혀서 공장을 멈춰 본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세상에 생상업체 공장에서 판매를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는 건 거의 대다수가 수요공급에 차질이 생겨 일어난다. 물론 여기에도 운은 따라야하겠지만 그렇게 공수가 잘 된다는 건 경영에 그만큼 밝고, 노력한 결과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어디에도 없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돌아온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 아닌가.

김 회장은 기업이윤의 사회적 환원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인근 경로당이나 마을 회관에 지속적인 일거리<장갑포장>를 만들어주어 이웃과의 공존공영에도 기여하고 있으며, 시니어클럽이며 여성장애인연대에도 정기적인 지원으로 유대를 쌓고 있다고 한다. 작년 연말에도 일천만원을 지원했다고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는다.

“혹 노동조합과의 갈등 같은 건 없습니까?”

요즘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노사관계에서 빚어지는 마찰이라 조심스레 물어본다. 종교와 지역감정과 노사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난해한 현안이다.

“우리한테는 노동조합이 없습니다.”

김 회장의 조용한 대답이다.

“근로기준법에 조합을 결성하게 되어있을 건데요. 더군다나 종업원이 150명이 넘는다면서요.”

“자기네들이 안 만드는데 내가 만들어라고는 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삼성 같은 곳은 대기업인데도 그런 게 없잖아요.”

그의 표정에 우리는 한 가족 같은 기업으로 그만큼 역지사지의 힘을 발휘해서 불평불만을 잘 해결해 나가고 있음이 자신 있게 묻어있다.

최근에 와서 김 회장은 또 하나의 일을 맞고 있다. 요즘 태동하고 있는 기여문화의 하나로 국제관광시민대학 이사장직이 그것인데,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이곳에도 나가 일을 봐주고 있다.

또 한해를 넘겼으니까 이 회장의 금년 나이는 희수(稀壽)라고 한다. 조심스레 한번 물어본다.

“이제 연세도 있고 한데, 그동안 고생도 많았잖아요, 자녀분들한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 앉아, 여행이나 하면서 좀 쉴 때도 되지 않았나요?”

그 말에 김 회장은 고개부터 흔들어놓고 말했다.

“아닙니다. 아직은 내가 있어야 합니다. 걱정이 돼서 안돼요. 중요한 결재는 내가 직접 하지 누구한테도 안 맡깁니다.”

환갑지낸 자식한테도 바깥 출입할 때는 차 조심 하라고 타이르는 어버이 심정이 담긴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요즘 한창 풍미하고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를 <일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고쳐놓으니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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